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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연극 '그게 아닌데'

이미경 작.김광보 연출의 연극 '그게 아닌데'의 한 장면. 의사 역 유성주(왼쪽) 배우와 조련사 역윤상화 배우. (사진=강일중)


소통부재 문제 우화적으로 풀어내

치밀한 대본, 배우들 연기 돋보여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그게 아닌데…'라는 표현은 보통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아무리 바른 얘기를 해도 사회적 강자 또는 다수가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힘없는 사람은 좌절하고 만다. 저항하고 항변하고 싶지만 워낙 저쪽에서 거세게 윽박지르면 나오던 말도 쑥 들어가버리고 만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아닌데…"다. 그나마 그 말 자체도 차단당하기 일쑤다.

대학로의 정보소극장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 '그게 아닌데'는 그런 상황 속에 놓인 한 동물원의 조련사 얘기를 다룬 우화 같은 작품이다.

왼쪽부터 의사 역 유성주-조련사 역 윤상화-혀사 역 유재명-동료 역 강승민 배우. (사진=강일중)


이 조련사가 일하는 동물원에서 어느 날 코끼리가 탈출한다. 뛰쳐나간 코끼리는 도시를 엉망으로 만들고 유력한 대통령 선거 후보의 유세장을 일대 혼란으로 빠뜨린다.

이 연극의 무대는 이 사건의 수사를 맡은 경찰서의 피의자 조사실. 형사는 이 사건이 단순한 코끼리의 난동이 아니라 치밀한 각본에 의해 조련사가 어떤 '몸통'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대선후보의 유세를 방해한 '정치사건'으로 몰아간다. 피의자 인권보호를 자임한 의사는 조련사가 동물과의 성적 접촉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사람일 뿐 범죄행위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편다. 조련사의 동료 또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한다. 조련사는 느닷없이 성도착자가 되어버린다. 조련사를 면회하러 온 어머니 역시 엉뚱한 말로 사건을 꼬이게만 한다. "비둘기가 떼로 날자 거위가 꽥꽥대고, 그 소리에 놀라 코끼리가 달리기 시작했다"라는 조련사의 상황설명은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는다.

조련사는 그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없다. 다만, 어머니만은 어이없는 얘기 속에서도 사건 발생의 배경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하나 제공한다. 조련사는 어렸을 적부터 억압당하고 있는 동물이나 사람을 '풀어주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 어머니는 급기야 아들이 일을 저지른 것은 감옥에 가 죄수들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황당한 얘기까지 한다.

어머니의 이런 대사를 포함, 등장인물 각자가 막무가내로 자기주장만을 독백처럼 펼쳐내는 가운데 기지와 유머가 넘치는 대사들이 많이 있다. 부조리극 색채가 강하고, 소통부재라는 진지한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엉뚱한 대사와 장면이 웃음을 자극하면서 관극의 재미를 돋운다. 정치인·의사·학자·경찰의 그릇된 사고나 행동 관행을 조롱하는 풍자적인 내용도 대사 곳곳에 녹아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블랙코미디다.

무대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 네 개만 놓여 있는 등 단출하다. 소품도 의사의 서류가방과 동물을 묶는 데 사용하는 동아줄뿐이다. 대본의 탄탄함과 배우들의 연기력으로 작품의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조련사 역의 윤상화 배우는 극 중 내내 무대에서 쉬지 않고 연기하며 나머지 네 명 배우들은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면서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부합하는 좋은 연기를 펼친다.

왼쪽이 어머니 역의 문경희 배우. (사진=강일중)

소속단체인 극단 청우의 작품뿐 아니라 외부 출연 작품들에서 늘 눈에 띄는 연기를 펼처온 윤상화 배우가 선보이는 조련사 역은 "그게 아닌데…"의 대사에서부터 마지막 장면에 코끼리가 되는 장면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아들에 대한 나름의 세심한 관찰과 보호의지를 대사로 풀어내는 어머니 역 문경희 배우의 연기 또한 익살스럽고 볼만하다. 부산에서 오랜 연기활동을 하다가 대학로 무대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의사 역 유성주 배우와 형사 역 유재명 배우의 연기도 아주 자연스럽다.

신예 안무가 금배섭이 만들어낸 윤상화 배우와 강승민 배우의 코끼리 움직임 이미지도 작품의 질을 한 단계 더 높이는데 기여했다.

◇연극 '그게 아닌데' = 극단 청우(대표 김광보) 제작.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과 한국연극연출가협회가 공동으로 시행한 신작희곡페스티벌에 당선된 작품으로 지난해 낭독공연으로 한 번 선보였다. 원래 단막극으로 쓰인 것이나 이번에 정식 무대에서 초연하면서 대본을 수정해 80분짜리 장막극으로 만든 것이다.

만든 사람들은 ▲작 이미경 ▲연출 김광보 ▲무대디자인 김은진 ▲조명디자인 이다경 ▲음악 전현미 ▲의상디자인 조문수 ▲움직임 금배섭 ▲분장디자인 길자연 ▲조연출 강현주.

공연은 정보소극장에서 오는 23일까지. 공연문의는 코르코르디움 ☎02-889-3561, 3562

소통과 대화가 꽉 막힌 조련사는 코끼리가 된다. (사진=강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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