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코르디움

 

[리뷰] 부조리한 사회 속 필연의 생존방식, 연극 ‘싸움꾼들’

 

 


[문화저널21·이슈포커스] 시동이 걸리고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인다. 그는 달린다. 동에서 서로, 남에서 북으로, 사자에 쫓기는 사슴처럼, 토끼를 쫓는 멧돼지처럼,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달린다. 목적지는 타인에 의해 결정된다.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에서 ‘달려야만 하는’ 그의 이름 퀵27호다. 목적지는 중요하지 않다. 왜 달리는가가 전부다. 맞기 싫으면 방어라도 해야 하는 잔인한 사각형 삶 위에 준비라는 것을 할 겨를도 없이 모두가 내던져진다. 퀵 27호는 앞만 보고 달리고 달려 그 링 위에 도착한다. 그리고 패배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한다.
 
연극 <싸움꾼들(김민정 작, 김광보 연출_극단 청우)>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 채 도망하기 위해 질주하지만 결국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 퀵27호의 불안정함을 따라간다. 그는 명령을 받고 달렸으나 도착한 곳은 폐허가 된 집터다. 그곳에서 엄마를 만나고, 엄마에게 다음 목적지를 전달받는다. 최 교수다. 최 교수는 퀵27호를 실험대상으로 삼고 적나라한 격투의 현장으로 내몬다.
 
최 교수에 의해 드러난 청년의 과거는 온전한 이야기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 과거 속 폭력적인 아버지가 있고, 살인이 있고, 불타는 집이 있고, 엄마가 있다. 현실에는 임신한 옆방 여자가 있고 최 교수의 딸이 있고 역시 과거에 붙들려 현실을 외면하는 최 교수의 아내가 있다. 엄마라는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퀵27호의 혼돈은 잘 정돈된 이야기가 주는 친절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관객은 상대도 모르고 싸우다 패배하기를 반복하는 그의 파편화된 기억을 훔쳐볼 뿐이다.
 
퀵27호는 마스크를 쓴 알 수 없는 상대와 싸움을 반복한다. 우리는 지금껏 싸워왔다. 철없던 사춘기 시절 엄마와 싸웠고 언니 누나 동생과 싸웠으며 친구와 싸웠고 자기 자신과도 싸웠다. 나이가 들수록 싸움의 대상이 점점 모호해진다. 최 교수가 퀵27호에게 원하는 건 승리가 아니다. 어차피 얻을 수 있는 건 승리의 환호가 아니라 끈질긴 패배에 따른 동정의 박수가 전부인 삶이다. 부조리한 인간의 생이 독이 차오른 파이터의 눈빛처럼 날카롭고 또 공허하다. 
 

이 격투의 현장 좌우로 배우들이 앉아있다. 무대 밖으로 퇴장하지 않는 인물들은 링 안의 처절함을 관람하듯 혹은 외면하듯 앉아 있다. 부조리한 현실을 견디는 각자의 생존방식은 다르지만 그 고독함은 같다. 퀵27호는 달리고 최 교수는 타인의 삶에 집요하리만치 매달리며 최 교수의 아내는 잠을 원한다.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로막고 개인으로 하여금 질주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허구를 통해 진실을 들춰내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알 수 없는 상대를 향해 이기려는 마지막 어퍼컷을 날려도 산산이 부서지는 것은 오히려 ‘나’다.

모두가 한파의 시절을 살고 있다. 매체마다 피가 흥건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한 발 앞서 있다. 퀵27호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는 강렬하나 연극은 어느 하나의 장면에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비롯해 주변의 인물들, 어쩌면 성공한 최 교수까지 모두가 헐벗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루한 설명을 하지 않는 연극의 모든 장면전환은 빠르게 이루어진다. 짧은 60여분의 시간 동안 세상과 합의를 이룰 수 없는 불통의 생이 반복된다.
 
관객은 퀵27호와 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혼란에 빠져있을 즈음 급작스레 연극은 끝나고 현실의 조명이 켜진다.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연극에 대해 당혹스러울 수 있지만 스피디한 전개와 상징, 함축으로 형상화된 개인의 혼란을 보여주는데 친절함이 꼭 필요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영경 기자 lyk@mhj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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