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코르디움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지’ 않고, ‘전이’된다

 

[와우스타 노오란 기자] ‘쎄다’. 전라(全裸)의 배우는 바닥에서 꿈틀대고, 그의 세계는 미친 듯 공회전한다. 한 사내가 그를 안쓰럽게 지켜보고, 그들을 또 누군가가 지켜보고, 관객은 이 모두를 지켜본다. 시선은 벌써 여러 겹이다. 관음을 관음하는 비정상의 이면에는 가슴께 걸린 오래된 울음을 토해내는 듯한 시원함이 있다. 정열이다.
 
연극 ‘에쿠우스’는 똑똑하지만 현학적인 작품은 아니다. 신, 인간, 섹스라는 무겁고 탁한 재료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관객의 입에 넣어준다. 공중으로 터져 나오는 언어들은 매우 분명해서 중의(重義)의 여지가 없다. ‘욕망은 또 다른 욕망을 낳는다’는 것은 이 작품에서 틀린 말이다. 욕망은 전이되며, 우리는 그 매력적인 과정을 탐미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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